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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범인, 하지만 피해자 게다가 탐정 _ 3월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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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03-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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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도서는 기가 막힌 밀실 추리물 『전원 범인, 하지만 피해자, 게다가 탐정』입니다.
일본의 문학 중에서도 유난히 강세인 장르가 미스터리 분야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분야에서는 우리를 많이 앞선다는 느낌입니다. 과거 출판계에서 책 밥 먹을 때도 일본의 추리소설들은 우리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히가시노 게이고죠. 이외도 많은 일본 추리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추리물에 대한 인기가 많이 사그라들다 보니 눈에 크게 안 띄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독서율이 크게 떨어지다 보니 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낮아져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요. 사실 출판계를 떠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급격한 독서율 하락이기도 합니다. 씁쓸하네요.
제가 속한 이번 합평 도서로 이 책이 선정되었을 때 제목부터 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입에 딱 붙지 않았거든요. 마케터 그만둔 지 1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이런 게 신경 쓰이네요. 그렇다고 이름을 조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하게>,<범피탐>,<전하탐>... 그나마 <전하게>가 입에 붙긴 하지만 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충분치 않네요. 이 책을 모르는 사람들이 봐야 하니 제목은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만들었으면 좋았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책의 제목은 이게 딱이네요. 여기서 괴리가 생깁니다. 안 읽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좀 더 쉽고 눈에 띄어야 하는데 이 책의 내용상 이보다 더 정확히 밝힌 게 없거든요. 아마 담당 편집자와 마케터도 꽤 고심하다 그냥 원제대로 간 게 아닐까란 상상을 해 봅니다. 어찌 되었던 100% 마음에 드는 제목은 아닙니다.
내용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보통은 밀실에 가둬놓고 한 명씩 몰래 죽여가며 범인을 찾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표적으론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있죠. 그런데 이 작품엔 특이하게 스스로 범인이라며 주장합니다. 범인이 되어야 살 수 있는 게임을 만든 탓이죠. 그러다 보니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그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찾아서 깨야 하니 모두가 탐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제가 이 책의 제목이 이게 딱이라고 말한 게 기억나실 겁니다. 모두가 사장을 죽인 범인인 동시에 모두가 다 죽으므로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서로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를 깨야 하니 모두 탐정이기도 한 것이죠. 제가 주목한 건 자살한 시카가와 사장은 과연 어떤 포지션이었을 가였습니다. 처음엔 그는 자기 회사에서 나온 전기 자전거의 문제를 알고도 덮고 이익만을 추구한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나옵니다. 그런 그가 결국 자살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그와 관련된 송사가 일단락된 것이지 피해자들과의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으니 회사는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긴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는 피해자였습니다. 범인을 찾기 위해 밀실에 갇힌 사람들은 하나씩 자신들의 비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내부 고발자인 개발팀 과장은 사장은 진짜 제품의 하자를 보고받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에 사건을 은폐하려던 시도를 녹음한 운전기사는 악마의 편집을 통해 사장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팩트를 교묘하게 비틀어서 언론에 내보내 역시 사장을 무정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의 폭로 기사를 쓴 기자는 스스로도 사장을 악당으로 만드는 프레임을 씌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유족 대표는 실제론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오히려 시카가와 사장은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가 됩니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뀌는 절차이 정말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또 하나의 재미는 중간중간에 던진 뜬금없는 설정과 대화입니다. 처음 7명이 모이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상종할 수 없는 대립관계의 사람들이 모이며 긴장감을 줍니다. 그런데 차에는 총 8명이 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기다리는데 결국 안 옵니다. 이 부분에서 왜 이런 쓸데없는 장면을 넣었나 했지만 나중에 밝혀지지만 시카가와 사장의 복수의 대상은 8명이었습니다. 결국 차에는 안 탔지만 시카가와 사장의 복수의 대상이 8명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밀실에서 영업부장 린도의 독백 중 진짜 린도라면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순간 린도의 정체에 대해서 의심했는데 이 역시도 마지막에 밀실 속 사건을 재구성하는 연극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왜 그렇게 썼는지 이해가 가게 만들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보면 답답한 게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한 힌트를 너무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보면서 추리하고 그게 맞는지 확인하는 게 추리소설의 묘미 중 하나인데 그게 부족한 게 늘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에는 이스터 에그가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점을 썼으니 안 좋았던 점도 밝혀야겠죠. 여기에 나온 사람들 중 청소부와 영업부장은 왜 죽어야 했는지 애매합니다. 그들도 사장을 죽였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사장을 죽인 게 아니었습니다. 살기 위해 완벽한 거짓말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란 사실을 게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죽였습니다. 그나마 영업부장은 부인의 불륜남이었으니 죽일 법 하지만 청소부는 정말 뜬금없습니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였던 기자의 행동도 애매합니다. 그로 인해 작품은 마지막 애매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살인 고백은 점점 숟가락 얹기로 인해 동어 반복이 되면서 지루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럴 바에 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좀 줄였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비록 아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어떤 작품이든 제 맘에 쏙 드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옥에 티는 존재하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재미있고 읽어 볼 만합니다. 특히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본다는 금언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요즘과 같이 SNS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거짓 정보가 혼재해서 가려내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AI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이 틀에 갇히다 보니 편향된 정보로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우리에게 축복일지 저주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재미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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